# 30대 초반의 웹 디자이너 권모(31, 女)씨는 아침에 일어나 장미향이 가미된 보디 워시로 샤워를 하고, 엊그제 새로 산 샴푸와 린스로 머리를 감았다.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건조한 피부를 위해 몸 전체에 보디 크림을 듬뿍 발라 주었으며, 머리를 말리기 전 스프레이 형태로 된 헤어 세럼을 뿌려서 드라이를 했다. 또 머리에 윤기를 더해준다는 헤어 오일을 발라 머리 손질을 완성했다. 출근을 위해 섬유유연제를 넣어 헹군 블라우스로 갈아입은 뒤 얼마 전 생일 선물로 남자친구에게 선물받은 향수를 귀 뒤쪽과 손목 등의 부위에 서너번 뿌려 주었다. 또 집을 나서기 전, 그녀는 치마에 정전기 방지 스프레이를 치맛단에 뿌렸다.

1시간여 동안 그녀는 도대체 몇 종류의 화학물질에 노출됐던 것일까?

탈취제, 향수, 헤어 스프레이, 네일 리무버, 방향제, 스프레이 미스트, 데오도란트 등 현대 도시인들은 매일 수많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volatile organic compounds)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 위 사례에 언급된 화학물질만 해도 10여종이나 된다. 여기에 메이크업 제품에 포함돼 있는 화학물질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증가한다. 로션이나 샴푸 하나만 해도 20여 가지가 넘는 화학물질이 첨가돼 있으니, 제품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들을 다 센다면 수는 실로 엄청나다.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대기 중으로 쉽게 증발되는 액체, 기체 또는 반고체 상태의 물질로, 대개 석유를 기본으로 한 제품들이다. 향수도 12세기 이전까지는 주로 천연물질로 만들어졌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미국 국립과학원에 따르면 향수의 95%는 석유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생활주변의 화학물질들은 가장 먼저 호흡기 건강을 위협한다. 1986년 미국 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medicine)에 따르면 천식 환자의 72%는 향수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경미한 향수 냄새로 인해 천식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장기간 이와 같은 화학 물질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두통이나 불면증, 우울증과 같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2004년 영국 bbc는 스프레이, 에어졸, 스틱을 포함한 방향제를 많이 사용하는 가정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기들에 비해 설사를 더 자주하며, 엄마들은 더 많은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한 적도 있다.
매일 피부와 호흡기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미용사들은 피부 질환과 알레르기 증상이 더욱 흔하며, 일반인에 비해 유산, 학습장애, 행동 장애 등의 빈도수가 더 높다는 외국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환기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은 밀폐된 사무실에서 장시간 근무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자신의 건강 뿐 아니라 타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지나친 향수나 데오도란트, 방향제 등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또 화학물질에 민감한 사람이나 천식이 있는 사람들은 가급적 향료가 첨가되어 있지 않은 제품들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어린 자녀들이 있는 일반 가정에서도 유해 화학물질의 사용을 줄이고 베이킹소다, 식초 등과 같은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서적 = ‘깨끗한 공기의 불편한 진실’(더난 출판)>>